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义天国师的茶禅一味论

       

发布时间:2009年04月19日
来源:不详   作者:崔錫煥(『禪文化』 發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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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序論

800年前 大覺國師 義天(1055∼1101)이 中國 天台山 國淸寺 智者塔院에서 發源을 세우길 겞뺐 高麗로 돌아가게 되면 高麗에 天台宗을 일으키겠다.궣箚 말했다. 그리고 義天은 高麗로 돌아와 天台宗을 세웠다.

義天은 宋나라 皇室에서 익혀 온 茶禪一味의 情神을 高麗에 널리 퍼트렸다. 宋나라 皇室의 專用茶인 龍鳳團茶를 들여오고 高麗의 腦原茶를 宋나라로 輸出하는 등 宋과 茶文化 交流에 적지 않은 寄與를 해 왔다.

京畿道 豊德郡 興王寺 터에서 發見된 「大覺國師 墓碑銘」에 遼나라 皇帝가 茶를 스승으로 받든다는 記錄이 전한다. 이 碑는 國立中央博物館에 있는데 길이가 50m도 채 안되는 墓碑銘에는 다음과 같은 事實이 전해온다.

“¨遼나라 天佑皇帝가 재차 經과 茶香, 金帛 등을 보내와 國師와 스승과 弟子의 緣을 맺었다.‚”

이 얼마나 소중한 文章인가.

大覺國師가 宋나라에 갔을 때 皇帝가 皇室御用茶를 膳物해 大覺國師와 因緣을 맺게 되었다는 古事도 전해온다. 그것보다 重要한 것은 大覺國師를 통해 宋나라와 貿易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宋나라의 龍鳳團茶가 高麗로 輸入되고 高麗의 腦原茶가 宋나라로 輸出되는 등 高麗와 宋나라간의 茶 貿易이 盛行하기에 이르렀다. 그처럼 義天은 宋과 高麗의 文化交流에 적지 않은 影向을 끼쳤던 人物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義天의 宋에 대한 功績으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가 天台宗의 開創이고, 두 번째가 高麗에 茶文化를 復興시킨 것이고, 세 번째가 杭州 西湖 附近에 高麗寺를 重建한 일이었다. 義天은 많은 求法僧 가운데 특히, 宋과 高麗의 貿易交流에 있어서 産婆役을 했던 스님이었다.

義天이 927년 創建했던 高麗寺는 1958년 廢墟가 된 이후 復原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中 지난해 10月 10日 永明延壽(904∼975) 誕辰 1100周年 記念學術硏討會에서 筆者는 「法眼宗風 繼承한 高麗 智宗과 그 時代의 禪思想」을 發表할 機會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杭州佛學院의 光泉 和尙으로부터 高麗寺 復原이 이루어진다는 消息을 전해 받았다. 그 때 筆者는 2005년 제3차 吳越佛敎文化學術硏討會에서 義天 大覺國師 誕身 950周年을 맞아 義天學術硏討會를 갖자고 發議, 積極 收容하겠다는 意志가 보여져 이번 義天學術硏討會가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2. 茶禪一味의 原流

中國 佛敎協會 會長이신 一誠 禪師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韓·中 두 나라의 友好 關係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처럼 韓·中 두 나라의 友好 關係가 흐르는 물처럼 이어져 온 것처럼 柏林禪寺에 建立된 禪茶一味記念碑는 韓·中의 茶禪을 공고히 하였다.

2001年 10月 21日 中國 柏林禪寺에 韓國의 佛敎春秋社가 發意하여 柏林禪寺 共同建立한 「韓中友誼趙州古佛禪茶紀念碑」除幕式에서 한 禪語가 되살아난다.

괊胚逵 中國은 한 뿌리이니 예로부터 한 집안이며 禪脈과 法脈 또한 서로 전함이다.〔韓中蓮體 千古休戚 禪風與共 法脈相襲〕‚

그 碑石에 達摩를 시작으로 茶禪一味의 淵源을 밝혀 韓·中의 茶禪一味의 뿌리를 밝히는 契機가 되기도 했었다.

義天이 活躍한 吳越國 시대는 浙江을 中心으로 佛敎의 繁盛期를 가져왔고 당시 首都인 杭州를 東南佛國이라고 불렀다. 그 時期 高麗의 光宗은 高麗 智宗 등 36人을 吳越國에 보내 가르침을 받으며 貴國한 뒤 法眼宗을 開創하는 등 宋나라와 活潑한 佛敎 文化交流를 해왔다.

그 뒤 義天은 1085年 4月 初 入宋하여 이듬해 5月 中旬 貴國하기 直前까지 宋나라에서 14個月間 50餘名의 禪知識을 만나 佛敎의 가르침을 받았다. 高麗에 들어온 義天은 곧바로 天台宗을 創宗하였고 그 情神을 茶禪不二 情神으로 이끌어냈다.

3. 宋과의 茶文化 交流에 影向을 미친 義天

天台宗을 開創한 大覺國師 義天은 高麗 文宗의 4번째 王子였다. 하루는 文宗이 여러 王子를 불러놓고 물어 보았다.

“너희들 中 누가 出家하여 道를 닦겠는가.‚”

沈默이 흐른다.

“어째서 마리 없는가.”

이때 4번째 王子인 煦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小子 出家하여 스님이 되겠습니다. 오직 아바마마의 命令에 따르겠습니다.”

文宗은 놀랍고 기쁜 얼굴로 煦를 바라보았다. 그때 義天의 나이 11살이었다. 義天은 景德國師를 依支하여 具足戒를 받고 出家한다. 出家한 뒤 宋나라로 들어가 智者塔院에서 書院을 세웠다.

海東에 佛法을 행한지 7百餘年인 바 비록 여러 宗이 다투어 벌어지고 여러 敎가 아울러 베풀어졌으나 天台의 한 가지는 대대로 밝아지지 못하였다. 옛적에 元曉 菩薩은 앞에서 아름다운 이름을 누렸으며 諦觀法師는 뒤에서 전해 떨쳤으나, 機緣이 아직 익지 못하여 빛을 밝힐 道理가 없음을 어찌하리오. 내 이제 天台宗을 創宗하여 天台思想을 온 宇宙에 펼칠 것을 誓願한다.

父王 文宗은 義天에게 꺍隙 知慧로써 根本을 삼고 큰 眞理로써 世上을 도우라꽩 뜻으로 祐世란 號를 내렸다.

義天은 이후 高麗에 들어와 天台宗을 開創하고 法眼宗을 吸收하여 5代 禪院을 세우고 禪敎雙修의 情神을 이어 나간다. 특히 義天은 宋代의 활발한 茶文化의 影向을 받고 天台思想에 茶禪一味 情神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大體的으로 海東 天台宗의 始祖로만 알려져 있는 義天을 통해 宋과의 활발한 茶文化 交流가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大覺國師가 涅槃하자 碑石이 모두 3곳에 세워진다. 高麗 仁宗 3年(1125) 開城 靈通寺에 大覺國師碑가 세워지고 高麗 肅宗 6年(1101)에 開城 興王寺에 大覺國師墓誌銘과 漆谷 僊鳳寺에도 大覺國師碑石이 세워진다. 最近 北韓 政府는 開城 靈通寺 復原을 日本 大正大學에 依賴하여 대대적인 發掘을 한 바 있다. 發掘 結果 大覺國師 義天의 石函과 墓塔이 發見되었다. 또 開城 興王寺에 세워졌던 大覺國師墓誌銘은 國立中央博物館에 保管되어 있다.

4. 宋나라의 御用茶 龍鳳團茶

宋나라의 徽宗의 『大觀茶論』에서도 龍鳳團茶를 天下에 으뜸이라고 하였고 王禹稱(954∼1001)의 「龍鳳茶詩」에도 龍鳳茶의 貴重함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樣標龍鳳號題新 용봉무늬 새겨 새롭게 이름지어

賜得還因作近臣 가까운 신하에게만 하사하셨네.

義天의 歡心을 사기 위해 龍鳳團茶를 주었으니 義天은 自然 茶禪一味의 情神에 젖었으리라 斟酌된다. 義天이 남긴 3首의 茶詩 中 「僧에게 茶를 준 것에 대한 和答의 詩〔和人以茶贈僧〕」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北苑移新焙 북쪽 동산에 새로 말린 차를

東林贈進僧 동림에 계신 스님에게 선물했네

預知閑煮日 한가로운 차 달일 날을 미리 알고

泉脈冷敲永 찬 얼음 깨고 샘줄기 찾네.

義天이 入宋 中 누군가에게 茶를 선물받고 고마움의 詩를 쓴 것 같다. 北쪽 동산〔苑〕은 福建省 建安縣을 말하며 그곳에서 生産되던 龍鳳團茶를 선물받은 것으로 解釋되고 東林은 淨土宗의 發祥地인 慧苑法師가 駐錫하던 東林寺를 말한다.

義天이 駐錫했던 杭州 高麗寺는 中國 茶의 代名詞로 떠오르는 龍井茶의 故鄕으로 자연히 義天은 茶와 天台의 思想을 둘로 보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宋에서 留學을 마치고 온 義天은 歸國한 뒤 天台山 智者塔院에서 發願한 대로 天台宗을 開創하고 禪과 敎의 眞理 속에 茶禪一味의 情神世界를 이어갔다.

5. 結論

지금까지 義天의 茶禪一味論을 살펴보았다.

義天이 活躍한 時期는 茶文化가 극도로 發展한 時期로 圓悟克勤의 「茶禪一味」와 白雲守端의 和敬淸寂이 流行한 時期였고 吳越國의 天目山을 中心으로 天目茶碗이 絶頂期를 맞았던 時期였다.

義天은 自然 茶文化의 香氣에 젖었고 宋나라 皇室의 극진한 禮遇를 받으며 御用茶인 龍鳳團茶를 선물받는 등 宋皇室은 國師의 歡心을 사려고 했다. 그러한 緣故로 훗날 大覺國師로 인하여 龍鳳團茶가 高麗에 輸入되었고 高麗의 腦原茶가 宋나라로 輸出되는 등 義天을 통해 高麗와 宋나라간의 茶貿易이 盛行하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義天이 이룩한 茶禪空間을 現代的으로 發展시키는 일 또한 後學들이 開拓해야 할 使命이 아닐 수 없다.

 

大覺國師 義天的茶禪一味論

崔錫煥 (禪文化 發行人)

1. 序論

800年前大覺國師在中國天台山國淸寺智者塔院,发愿要回到高丽创建天台宗,之后回高丽开创了天台宗。

義天把在宋朝皇室中所学的茶禪一味的精神移到高丽并发扬起来。引进宋朝皇室專用的茶龍鳳團茶,并把高丽的腦原茶输出到宋朝,他在高丽与宋代茶文化交流中做了不少貢獻。京畿道豊德郡興王寺遺跡中發見的『大覺國師 墓碑銘』中写到,辽国皇帝喜欢茶的记录。这碑長度不到50米现保存在國立中央博物館,墓碑銘中有以下內容.

“遼國天佑皇帝把制茶经和茶香,金帛等物品送來与國師和師父.弟子們结缘” 这是多么重要的文献啊。

大覺國師到了宋朝,皇帝用皇室御用茶与大覺國師接了因缘,这个故事流传下来。更重要的是通过大覺國師形成高丽与宋朝的贸易。由此宋朝鳳團茶进入高丽,而高丽的腦原茶输出到了宋朝,宋朝和高丽的茶叶贸易盛行了。由此可见義天是对宋朝和高丽之间的文化交流做出不少贡献的人。他所做的贡献有3种。第一是开创天台宗; 第二是复兴高丽的茶文化; 第三是在杭州西湖附近重建高丽寺。 在众多求法僧当中義天对宋和高丽的贸易交流起了重要作用。

927年義天创建的高丽寺,在1958年成为废墟之后,至今还没有復原.去年11月10日在“永明延壽(904-975)誕辰1100周年紀念學術硏討會”中本人發表过“繼承法眼宗風的高麗智宗和其时代的禪思想”的文章。当时从杭州佛学院 光泉法师之处得到復原高麗寺的消息。为了纪念大覺國師誕辰950年而举行第三次吳越佛敎文化學術硏討會是可喜可贺的事。

2。茶禪一味的原流

中國佛敎協會會長一誠禪師說過“韓.中兩國友好關係像流水一样渊源不断”。在栢林禪寺建立的禪茶一味紀念碑象征着韓.中茶禪關。2001年10月21日在中國栢林禪寺,韓國佛敎春秋社和栢林禪寺共同建立了“韓.中友誼趙州古佛禪茶紀念碑”,想起当时开幕式上的禅语“韓中蓮體 千古休威 禪風興共 法脈相依”

碑文上記載達摩开始茶禪一味的淵源,它成爲澄清韓.中茶禪一味是一根的契机。義天活跃的吳越國時代是以浙江爲中心的佛敎繁盛期,當時首都杭州被称为東南佛國,高丽光宗把 智宗 等36人送到吳越國求法,歸國后開创法眼宗并与宋朝开展了佛敎文化交流。其后義天于1085年4月初入宋第二年5月回国,14个月之间参拜过50多位禪知音讨教佛教教理,回到高丽后开创了天台宗,其精神是禪茶不二精神.

3. 對宋代茶文化交流有影向的義天

開創天台宗的大覺國師義天是高麗文宗的第4王子。有一天文宗问各位王子“你们当中谁要出家修道?”当时一时沉默。“为何不说话?”文宗再问,4王子说“我尊从父亲遗志出家当和尚。”文宗高兴的望着他。当时義天只有11岁,在景德國師处受具足戒出家,后到達宋朝,在智者塔院建了書院。虽然佛法传到海東700余年,创建各个宗派,但是天台一宗的渊源没有澄清。天台宗在元曉菩薩以前留下美好的名声,谛观法師其后得到发扬,但是机缘未熟没有发挥光芒,義天發願开创天台宗,让天台宗思想传遍整个宇宙。

文宗让義天以智慧爲根本,用真理了解世界的意思给他下了祐世之號.

其后義天回到高丽开创天台宗,吸收了法眼宗,建立了五代禪院,繼承了禪敎雙修精神。特別是義天受到宋代茶文化影响使天台思想注入了茶禪一味精神。但是很少有人知道高丽与宋代活躍的茶文化交流是海東天台宗始祖義天所促成的。大覺國師涅槃后碑石建在3个地方:高麗仁宗3年(1125)開城靈通寺建了大覺國師碑;高麗肅宗6年(1101)在開城興王寺建了大覺國師墓誌銘;漆谷倦风寺建立了大覺國師碑石. 最近北韓政府请日本大正大學對開城靈通寺进行復原,發掘了大覺國師義天函和墓塔。还有開城興王寺建立的大覺國師墓銘現保管在國立中央博物館.

4. 宋代御用茶 龍凰團茶

宋代徽宗『大觀茶論』中写到龍鳳團茶天下第一,王禹稱(954-1001)写的『龍鳳茶詩』中對龍鳳茶寫了以下內容.

样标龍鳳號題新 용봉무늬 새겨 새롭게 이름지어

赐得還因作近臣 가까운 신하에게만 하사하였네.

宋代皇帝送給義天龍鳳團茶,使義天沉浸在茶禪一味精神中。 義天所留下的3首茶詩中送茶給僧和答詩<和人以茶贈僧>中寫了如下:

北苑移新焙

束林赠进僧

预知閑煮日

泉脈冷敲永。

義天在宋朝收到茶以后为答谢写的诗,北苑解譯爲福建省建安懸,收到那里生产的鳳凰團茶,東林解譯爲淨土宗的發祥地就是慧苑法師駐錫的東林寺.

義天駐錫過的杭州高麗寺是龍井茶的故鄕,自然而然茶和天台宗思想是分不开的。结束留学回国后的義天就像在天台山智者塔院發願一樣開創了天台宗,在禪和敎理的眞理中继续發揚茶禪一味精神世界.

5. 結論

至今我讲述了義天的茶禪一味論.

義天活躍的時期是茶文化高度發展的時期,是園悟克勤的『茶禪一味』和白雲守端的和敬淸寂很流行的時期,也是以吳越國天目山为中心的天目茶碗頂盛期.

義天沉浸在自然茶文化的香氣中,受到皇室的亲切礼遇,收到御用茶龍鳳團茶为禮物等事實表明宋皇室对国师的尊敬,通过大覺國師龍鳳團茶進入高麗,高麗的腦原茶輸出到宋朝,高麗和宋朝茶貿易达到了盛行时期。

怎样把義天的茶禅思想发展成为现代思想,是我们后学者的使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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